나는 2011년 첫 백오피스 인턴을 마치고, PI부서 인턴을 거쳐 수차례의 지원 끝에 G증권사의 리서치센터 RA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당시 나는 리서치센터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업계 종사자는 단 한명도 알지 못했고, finance career bible이라는 유명한 업계 입문서에서 (지금은 절판) 작게나마 리서치센터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읽은 것이 다였다.
합격하여서도 비전공자인 탓에 조언을 구할 외부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유일하게 두번의 인턴 당시의 팀원 분들과 팀장님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보통 주니어들은 주니어 선배 (고작해봤자 4-5년 선배) 에게 조언을 많이 구한다. 그러나 주니어 선배들 또한 아는 것은 비슷하고, 오로지 본인의 경험이나 편향된 시각, 카더라 통신에 의해 조언을 해줄 수 밖에 없다. 조언을 구할 때는 다양한 시니어 종사자들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인턴을 하며 만났던 분들은 젊을 때는 무조건 늦게까지 일하는 부서에 있는게 배우는 것도 많고 커리어 상 좋은 것 같다며 무조건 가라고 조언해 주셨다.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리서치센터는 애널리스트가 일하는 부서이다. 리서치센터는 크게 기업분석과 매크로분석으로 나누어진다.
기업분석은 반도체, 바이오, 조선, 은행, 화학 등 특정 섹터 담당 애널리스트가 배치되어 해당 섹터 내 기업들을 커버하게 된다. 매크로분석은 경제 (이코노미스트), 채권, 시황, 퀀트, 전략과 같은 시장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애널리스트가 배치되어 주식시장, 채권시장, 경제, 주식시장 수급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매크로 분석 쪽은 기업분석 대비 좀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여 시니어 애널리스트가 근무한다.
기업분석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IR (투자자와의 소통창구, 주가방어 부서라고 이해하면 쉽다),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가 고객으로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펀드매니저에게 특정 종목에 대한 세일즈를 진행한다. 리포트는 증권사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업계에서는 이러한 리포트는 모두 모아 전시하는 fnguide.com (유료) 이라는 사이트를 많이 참고한다. 주가는 결국 실적이다. 본인이 추천한 종목이 실적이 잘나오고 주가가 좋을 경우 그 애널리스트의 명성이 높아지게 된다. 누가 그 종목에 대한 리포트를 썼는지, 어느 강도로 쎄게 밀었는지 (추천했는지), 리포트에 써있는 실적 추정은 잘 맞았는지 등이 고려 요소가 된다. 나는 기업분석 시니어 애널리스트를 보조하는 RA로 채용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당 시니어 애널리스트는 업계에서 호랑이로 유명한 분이었다. 화가나면 욕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지금은 업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예전에는 시니어 애널리스트들 대부분은 무척 무서웠다. 아무래도 업계 초호황기를 겪어 무서울게 없으셨기 때문일 것이다. 리서치센터는 철저히 도제식 상하 관계로 일을 하게 된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일할 때만 해도 RA는 거의 노예 취급을 했었다. 잡일을 해주면서 어깨 너머로 배우는 직업이 없는 비숙련공 취급을 받았었다. 애널리스트는 무척 바쁘다. 친절하게 어떤 업무에 대해 하나하나 알려주고, 섹터나 산업에 대한 강의를 해주는 애널리스트는 없다고 보면 된다.
리서치센터는 엄격한 도제식 체계 문화이다. 증권사에서 가장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로 돌아가는 곳이 리서치센터이다. 신입사원으로 들어오기에 RA는 실수가 잦다. 잠을 못자는 상태에서 많은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하고 직접 치다보니 많은 신입사원들이 혼나곤 한다. 그러나 애널리스트도 RA시절의 고생을 알기에 실수는 다소 용서되는 분위기가 있다.
RA에게 가장 강조되는 것은 Attitude이다. RA는 무슨일이 있어도 애널리스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다. 때문에 과거에는 이런 상하관계와 관련해서 사고도 많이 났었다. 내가 RA생활을 할 때 당시 들었던 이야기는 리서치센터의 전성기 시절인 1990~2000년대 초반에는 실수하면 두들겨 맞는 RA도 있었다는 이야기 였다.
그래도 애널리스트가 되면 엄청난 고연봉으로 보상 받을 수 있었던 시절이기에 모두가 참고 견뎠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일할당시 내가 일했던 리서치센터는 군복이 아니라 양복만 입었을 뿐 군대를 뺨치는 상명하복 문화가 있었다.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존재한다. 간혹 천사같은 애널리스트를 상사로 모시는 RA도 있다. 그럼에도 RA는 무조건 애널리스트 보다 일찍 출근해야하고 늦게 퇴근 해야하는 것이 업계 불문율이다. 지금은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많이 낮아지며 이정도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회사마다 실력마다 차이는 있지만, 평균 2-3년간 RA생활을 하며 1:1 또는 1 RA :다수로 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RA 때 어떤 애널리스트와 일을 하며 얼마나 어떻게 배우냐가 향후 애널리스트로 일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도 있다. 애널리스트와 궁합이 맞는 경우에는 애널리스트가 RA를 많이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애널리스트의 가장 솔직한 본심은 RA의 바이사이드 이직이다. RA가 주식운용사 펀드매니저가 되어 자신의 고객으로 성장한다면 향후 영업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스타 애널리스트 밑에서 일한 RA들은 애널리스트가 되더라도 선배를 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배의 그늘에 가려 리서치 업계를 빨리 떠나는 것 같다.
꿈많던 수많은 청춘들이 RA를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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