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주식회사 라는 말이 있다.
여의도는 워낙 좁고 한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
결국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회사와도 같다는 뜻이다. 여의도에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자문사, 캐피탈사, 저축은행, 은행, 연기금, PE 등이 집결되어 있으며, 여의도 주식회사 라는 말은 이 모든 업종을 통칭하는게 일반적이다. 여의도 주식회사라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는 있지만 소통이 가능한 을지로 증권사 2곳과 강남 증권사 2곳은 물론 강남에 있는 VC와 일부 PE 등 업계 전반을 포함하는 말이다. 다만, 을지로에 있는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 (M&A, 리서치 중심)은 여의도 주식회사와는 다소 교류가 희박한 것 같다. 이에 여의도 증권가 사람들끼리는 농담삼아 같은 업종 끼리 (예를 들자면, 증권사에서 증권사로, 운용사에서 운용사로 ) 회사를 옮기면 부서이동이라고도 말한다.
여의도 주식회사는 빠르고 무섭다. 업계 내 대형 사고 (양다리, 불륜, 압수수색 등) 같은 경우 부문과 관계없이 당일 내 소문이 쫙 나게 되며, 특정 부문 (IB) 내 실무적인 사고 (IPO 배정 사고 등)는 같은 부문 내 (IB - IPO) 에서 몇일 내로 소문이 도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정된 딜 소식도 알음알음 정보로 전달된다. 뉴스보다도 빠르게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달되는게 여의도 증권가이다. 여의도 소문은 보통 텔레그램과 카톡으로 전파 된다. 여의도에서 텔레그램을 많이 쓰는 이유는 리서치센터가 모두 텔레그램 방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방에는 주식이야기, 리포트 발간 소식, 실시간 공시, 기사공유, 잡소리 등이 올라온다. 내 생각에 이렇게 여의도 주식회사가 소문이 빠른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1. 학연으로 얽혀있다.
여의도 주식회사에는 상위권 대학 졸업자 그중에서도 상경계열이 많다. 상위 10개 대학 비중이 거의 80%는 될것으로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상위 6개 대학 비중은 60% 이상은 될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느끼는 업계 내 학력은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인맥형성과 실력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업계 종사자라면 모두가 아는 고위 연봉자들 중에도 충분히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또, 그 외 대학들은 강남 8학군 출신의 해외 명문대 졸업자가 많다. 업계에는 외상금남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외고 상경계 졸업의 금융권 재직 남자를 말한다. 그만큼 업계에 외상금 남이 흔하기에 이런말이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이 같은 대학 선후배로 얽혀있어 업계종사자의 이름만 안다면 10분내로 평판 조회가 가능한 곳이 여의도 주식회사이다.
이렇게 업계 종사자의 학벌이 높은 이유는 첫번째로는 실제 증권, 운용업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직군이 아니고 누구나 배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막상 업계에 들어와 일해보면 일부 특정직군을 제외하면 사실 밖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삶과는 달리 누구나 업계에 들어와 시간을 가지고 숙련을 거치면 적응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업계 종사자라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의도 주식회사에서는 결국 시니어 레벨이 되면 거의 모든 직군이 영업직군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기업 백오피스와 마찬가지로 학벌과 같은 정량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자리는 없고 지원자는 넘쳐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그렇다면 우선은 줄세우기를 통해 한번 필터링을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문과가 지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직무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0여년간 일해보니 지식적인 격차도 압도적으로 낼 수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격차를 얼만큼 낼 수 있냐는 본인이 속한 업종 (리서치인지, IB인지, IB중에서도 IPO인지, VC인지 등)의 성격에 따라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영업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딜 소싱 능력이다. 두번째로는 업계에 대한 관심과 준비의 차이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은 이미 업계에 선배들이 많이 들어와있다. 업계에 진출한 선배들의 존재 유무는 선배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질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어떤 그룹의 학생들은 GS, CS, JPM에 다니는 외국계 증권사에 재직중인 선배들과 교류하며 술을 마시는 반면, 어떤 학생들은 증권사에 어떤 부서가 있는지, 증권사 규모 순위도 잘 모른채 입사지원을 하게 된다.
여의도 증권가는 진입이 어렵다. 그러나 주니어때는 일단 진입해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여의도 주식회사에서는 즉전감이 더 선호된다. 즉전감은 인턴경험 (=관심, 얼마나 시간을 가지고 굴렀냐)으로 가장 잘 요약될 수 있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2-3학년때부터 썸머 인턴 등의 자리를 구하여 다양한 직무를 경험해보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정해 직무에 맞게 준비를 시작한다. 압도적인 스펙은 물론 풍부한 자기소개서에 실무 경험까지 갖춘다. 그 외 대학 졸업자들이 뒤늦게 이를 만회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증권사는 평균적으로 돈을 많이 준다. 문과가 갈 수 있는 자리는 한정적인데, 그 중에서도 보수는 제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노동시간도 (접대자리도 노동의 연장이다) 길고, 수명도 짧다. 실적이 좋다면 수십억을 받는 임원도 나오는 반면 실적이 없다면 도태된다.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자신있는 학창시절을 보내왔고, 본인이 업계에 와서도 상위권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증권업은 허세가 심하다. 수십억을 받는 사람을 보며 나도 그들이 되길 꿈꾸고, 그들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때로는 그들은 나의 팀장, 본부장으로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의 대부분은 공시 평균 정도의 임금을 받다 집에 간다. 사실 그 평균 임금도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레벨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프론트 부서는 끊임없이 실적으로 압박받는다. 못하면 평균이하의 돈을 쥐게 된다. 가히 능력만큼 받는 자본주의의 최전방이라 할 수 있다.
2. 다른 업종보다 이직이 잦다
"여의도는 탐욕의 땅이고, 공채로 뽑힌 여러분들조차 곧 용병이 될거다. 여러분 중에는 순혈 공채로 살아가길 바라는 분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용병이 되어 여의도 어딘가의 식당에서, 술집에서, 다른 회사에서 옆자리로 혹은 갑과을이 되어 다시 만난다. 그 때에 민망하지 않게,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사람이 됩시다." 어디선가 본 증권사 인사팀의 입사 첫날 조언 글귀이다. 여의도 주식회사는 이직이 잦다. 증권사 부장이라면 보통 현 직장이 3-4번째 직장일 확률이 높다. 업계종사자의 은퇴할때까지 다닌 직장 평균을 내보면 3-4곳 사이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직이 잦은 사람은 6-7곳의 직장을 다니다 은퇴하기도 한다. 공채처럼 경력직도 대형 증권사 입사가 더 어려운 편이다.
중소형 증권사는 단순히 성과와 경력만 놓고 사람을 채용한다면, 대형 증권사는 인사팀 내부적으로 학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편이다. 대형 증권사에 입사하는 주니어들은 입사가 어려운 만큼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높다. 물론 나이가 들면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정치에 지치거나 능력 있는 시니어는 더 늦기전 형님을 따라 중소형사로 이직한다. 네임밸류는 주니어 시절의 반짝이는 목줄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돈을 원래 많이 가진사람 (=금수저)보다는 업계에서 많이 버는 사람(=개천룡)을 더 쳐주는 것 같다. 암묵적으로 모종의 능력지상주의를 더 쳐주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도 대형 5개사의 주니어들보다는 그 외 증권사의 초년생 이직이 잦은 편이다. 간혹 나오는 대형증권사 주니어 자리는 입사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직이유는 서로가 다양하다. 업종 변경, 인센티브, 상급자와의 불화, 노동시간, 금융업의 현실 등 각기 다른 모종의 이유로 서로는 서로의 자리로 이동한다. 완전 시니어때는 몸값과 영업영역의 중복으로 이직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주니어 레벨때는 깨닫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 증권업에서 회사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직무에 일하고 있느냐이다. 본인이 이름없는 증권사의 프론트 부서에 있다면, 향후 대형증권사의 프론트 부서로도 갈 수 있다. 반대는 더 쉽다. 그러나 중소형증권사 회계팀이 대형증권사 프론트 부서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형증권사 회계팀이 중소형 증권사 프론트로 가는 것 또한 거의 어렵다.
프론트는 철저히 경력 중심의 채용이 진행되어 주니어때 이직 시도를 하지 않으면 옮기기도 어렵고, 가서도 적응이 어렵다. 주니어 시절의 1-2번 이직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주니어때는 잘할 수 있는일 (돈)이나 하고 싶은 일 (재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증권업에는 전문성이 있고 요구하는 능력이 다 달라 분명 적성에 맞는 일이 있다. 적성에 만 제대로 맞다면 재미는 물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주니어 시절 1-2번의 이직을 통해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정착해야하는 이유는 또 있다. 나이가 들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열정이 떨어진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생긴다. 처음의 열정은 점점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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